또 다른 예산낭비의 전조? 'AI 시티' 출범에 대한 우려
스마트시티 사업 관련 전문가
지난 9월 5일, 국토교통부가 새 정부의 국정과제인 'AI 시티' 조성을 위한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 출범을 발표했다. 기존 스마트시티를 넘어 "방대한 도시데이터를 기반으로 AI를 활용해 교통·에너지·안전 등 도시 문제를 사전에 예측·해결하고, 나아가 국민 개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도시 다양한 분야 전반에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하지만 스마트시티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우려스러운 데자뷰를 느낄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똑똑한 도시' 신화
201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스마트시티 사업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예산을 투입했는가? 과거 국토부는 "2025년까지 10조 원을 투자하여 15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고 데이터 통합 플랫폼 보급을 전국 108개 지자체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도시 현실은 어떤가?
여전히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미세먼지는 심각하며, 주거비는 치솟고 있다. 화려한 관제센터와 디스플레이, 수많은 센서들이 설치되었지만 시민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미미하다. 이제 다시 'AI'라는 새로운 옷을 입혀 또 다른 대규모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스마트시티 사업의 고질적 문제들
1. 기술 중심주의의 함정
스마트시티 사업은 처음부터 시민의 실제 필요보다는 기술 공급자의 논리에 의해 추진되어왔다. "센서네트워크, 통신플랫폼, 컨트롤시스템 등 인프라" 구축에만 집중하고, 정작 이런 시설들이 시민 생활에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검증은 부족했다.
2. 통합 운영의 실패
각 지자체마다 다른 업체, 다른 시스템으로 구축된 스마트시티 인프라는 호환성 문제로 제대로 통합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개별 시설물 관리 이상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스마트'라는 이름만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3. 지속 가능성 부재
초기 구축비용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유지보수비용이다. 화려한 시설들이 몇 년 지나면 고장 나거나 업데이트가 안 되어 방치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담당 공무원이 바뀌면서 사업 연속성이 끊어지는 것도 흔한 일이다.
4. 시민 참여 배제
스마트시티는 시민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정작 계획 단계부터 시민들의 의견은 형식적으로만 수렴되고 있다. 결국 공급자 중심의 기술 도입으로 귀결되면서 시민들은 수동적 수혜자로만 인식되고 있다.
5. 담당 공무원의 비전문성
스마트시티 사업은 국토부 도시경제과에서 담당을 하지만, 스마트도시협회라는 하부조직을 통해 간섭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관련 전문가와 지자체가 협력하여 만들어낸 사업 계획서를 정작 관련분야에 문외한인 공무원이 탁상행정으로 가위질을 하여 사업의 목적과 본질을 벗어난 관리자 중심의 쓸모없는 누더기 실시설계로 변질된다.이렇게 변질된 사업은 정작 해당지자체에는 쓸모도 없고, 국토부의 하찮은 성과 홍보에만 사용될 뿐이다.
'AI 시티', 또 다른 예산낭비인가?
이번 AI 시티 사업을 보면 기존 스마트시티의 문제점을 성찰하고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단순히 'AI'라는 유행어를 앞세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기존 스마트시티 인프라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AI 기술을 더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AI 기술 자체는 분명 유용하다. 하지만 도시 문제 해결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거버넌스와 시민 참여, 그리고 지속가능한 운영 체계다. "최첨단 ICT 기술을 접목해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똑똑한 도시"라는 구호는 10년 전에도 들었던 말이다.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기술 도입보다 먼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첫째, 기존 스마트시티 사업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이 성공했고 무엇이 실패했는지, 시민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효과는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둘째, 시민 중심의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기술 공급자가 아닌 시민의 실제 필요에서 출발하는 상향식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지속가능한 운영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화려한 초기 투자보다는 장기적으로 유지 가능한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넷째, 단계적이고 실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기 전에 작은 규모의 실증 사업을 통해 효과를 검증하고 개선해야 한다.
마무리: 진정한 혁신을 위하여
AI 시티라는 새로운 간판을 걸기 전에,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의 스마트시티 사업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기술은 수단일 뿐이며, 진정한 목표는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어야 한다는 원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진정 시민을 위한 도시를 만들고자 한다면, 화려한 신기술 도입보다는 기존 문제들을 차근차근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AI 시티'도 또 다른 예산낭비가 아닌 진정한 도시 혁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국토교통부, "AI 시티 조성을 위한 관계기관 TF 출범", 2025년 9월 5일
[2] 국토교통부, "AI를 활용한 국민 맞춤형 도시 서비스 제공 방안", 2025
[3] 관계부처 합동, "스마트시티 추진 전략", 2019년 1월
[4] 한국정보화진흥원, "스마트시티 정책 및 기술 동향 분석", 2023
[5] 감사원,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조성사업 추진실태", 2024
[6] 국정감사자료, "스마트시티 사업 예산 집행 현황 및 문제점", 2024
[7] 한국행정연구원, "스마트시티 거버넌스와 시민참여 방안", 2023
[8] OECD, "Smart Cities and Inclusive Growth",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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